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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칼럼> 전노협과 ‘파업전야’ /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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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2-23 14:18 조회1,9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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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칼럼]전노협과 ‘파업전야’ (2010년 01월 18일, [경향신문])

 

이 재 성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1990년 4월, 정부는 한 영화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영사기와 필름을 압수하고, 전국의 상영장에 전투경찰을 투입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곳들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전경과 최루탄으로도 부족했는지 전남대에서는 헬기까지 띄워가며 폭력진압을 벌였고, 결국 한 학생은 전경이 쏜 직격탄이 얼굴에 맞는 사고를 당했다.

이에 ‘사전검열 제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공방이 벌어져,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는 그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한국에 자유로운 공간이 조금 더 넓어지는 순간이었다. 문제가 된 영화는 영화제작소 장산곶매에서 만든 <파업전야>라는 작품이었다. 당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는 그 작품을 ‘노동절 101주년 기념영화’로 선정하여 작품에 세계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1990년 영화상영 대대적 탄압

도대체 영화 내용이 어떠했기에 정부가 그토록 상영을 막았던 것일까? <파업전야>는 인천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결성해가는 과정을 그린 노동영화였다. 영화 시나리오에는 한독금속, 남일금속과 세창물산 등 당시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생생한 체험담이 주된 자료로 활용되었다. 영화는 인천 부평에 있던 한독금속 공장에서 촬영되었다. 이 작품은 분명 ‘인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당대를 살아가던 일반 노동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동생 학비와 가족 생활비를 대며 힘든 노동을 견디는 젊은이도, 타 지역에서 해고를 당한 후 또다시 인천까지 ‘흘러들어’ 와야 했던 아저씨도, 성희롱을 참으며 남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야 했던 여성들도 모두 보통의 영화나 TV 드라마에는 등장할 수 없었던 ‘시민권 없는 시민’이었다. 당시 인천에는 약 35만 명의 그러한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전국적인 상급단체로까지 발전시켜 ‘전노협’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1990년 1월에 출범한 전노협은 ‘민주노조’들의 전국조직이었다. 노동조합에 대한 영화도 그렇게 탄압을 했는데, 직접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그냥 둘 정부가 아니었다. 전노협은 출범식 도중에 전투경찰의 침탈을 당했고, 수많은 조직 간부들이 수배, 구속되는 시련을 겪으며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1997년 ‘민주노총’이 합법화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제는 전노협과 <파업전야>를 무조건 옹호할 수만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전노협은 1995년에 민주노총이 만들어지면서 해산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운동 노선에 대한 논쟁이 크게 벌어졌었다. 또한 <파업전야> 역시 너무 단순한 선악(善惡) 구도를 가지고 있으며, 노동운동적 시각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당대의 기록물이자 증언자로서의 전노협과 <파업전야>가 담고 있는 역사적 진실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다.

‘역사 몇십주년’서 소외 아쉬워
 

역사는 단순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통해서 생명력을 얻고, 다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자원이 된다. 역사의 한 부분만을 기억해 내어 과장하고, 타자의 역사해석을 억압하면서 배척하는 것은 오히려 미래를 창조하는 에너지를 갉아먹는 어리석은 행위다. 2010년이 되어, 역사의 ‘몇 십 주년’ 기념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노동의 역사가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금융산업과 서비스산업이 중요해졌다고 해도, 역시 제조업은 가장 근간이 되는 산업이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그 산업을 지탱하고, 현장을 지키는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전통적인 생산의 도시, 인천은 그래서 여전히 노동자의 도시다. 그런데도 인천에는 산업과 노동의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공간이나 기념물이 없다. 주안의 키친아트 본사 앞에 있는 ‘추모비’가 유일하다. 올 겨울에는 전태일, 전노협, 그리고 인천의 역사와 미래를 생각하면서, 2008년에 발매된 영화 DVD <파업전야>를 한 번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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